• 최종편집 2024-03-18(월)
 
미스터트롯 眞 임영웅 “간절히 바라던 무대 최고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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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안전 장주비 기자] 인생을 걸고 나온 프로그램. 경연 내내 고민과 고통, 또 춤 연습을 하다 목 디스크 증상이 심해 침을 맞기도 했지만 절실했기에 3개월간의 여정에서 그는 목소리로 시를 썼다.
그가 말하듯, 속삭이는 듯 읊조리는 단어 마디마디가 가슴 속에 내려앉아 듣는 이의 마음의 상처를 부드럽게 유려하게 어루만졌다. 담담했기에 더 절절하고, 담백했기에 더 가슴 미어졌다. 마음껏 울어도 된다고, 이젠 괜찮아 질 거라고, 고생 많았다고, 그는 목소리로 우리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2015년 포천 시민가요제 등을 포함해 가요제에서 상도 곧잘 받았다. 지금의 소속사 대표도 만났다. 데뷔는 순조로웠다. 하지만 앨범을 내는 것과 가수로 이름을 알리는 건 차원이 달랐다. “‘미워요/소나기’라는 디지털 싱글앨범으로 데뷔했다.
 
KBS 아침마당에 출연해 5연승도 해보고, 가요무대 등 각종 프로에서 어엿한 가수로 인정받긴 했지만, 대중을 향한 문턱은 높기만 했다. 그랬던 그에게 미스터트롯은 꿈처럼 찾아온 선물이었다. “아무것도 없었는데, 거의 무명이나 다름없었는데, 사람들이 많이 알아주시고 제 음악을 많은 분들이 들어주시고. 정말 좋지요. 아직도 꿈꾸는 것 같아요.”라고 이야기했다.
 
미스터트롯에서 그는 첫 등장부터 돌풍을 일으켰다. 홀어머니를 떠올리며 불렀다는 ‘바램’(원곡자 노사연). 그가 담담하게 건네는 “우리는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란 노랫말이 커다란 울림을 줬다. 정통 트로트 장르에 도전한 조용필의 ‘일편단심 민들레야’를 거쳐 레전드 미션곡 ‘보라빛 엽서’에선 원곡자인 설운도로부터 “나는 저렇게 감정을 담아 부르지 못했다”는 극찬을 끌어내기도 했다.
 
그는 지독한 연습벌레다. 호흡을 어디서 쉴지, 어디에서 세게 부르고 약하게 할지. 여기서 저기서 멈춰보고 강약도 주고, 여기서 긁어보기도 하고, 저기서 살살 불러보기도 하면서 수만 개 조합 중에서 최적의 소리를 찾은 뒤 몸에 익을 때까지 연습했다. 연습시간은 10시간을 훌쩍 넘기기 일쑤다. 그렇다고 형식에만 얽매인 것도 아니다. 트로트가 트로트다워야 한다는 것도 어쩌면 편견이다. 그는 형식적 완성도를 넘어 임영웅식 감성적 트로트의 세계를 구축해왔다. 목소리에 서린 따뜻함과 배려는 위로와 안식이 됐다. 기계처럼 보일 법한 그의 완벽주의에 사람 향기가 배어있는 건 체온이 느껴지는 그의 목소리가 주는 힘이다.
 
그가 최고의 무대로 꼽는 ‘트롯에이드’ 에이스전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원곡자 김목경)는 임영웅에게 또다른 해탈이었다. 3명의 다른 팀원 인생까지 걸린 경연. 무게감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냥’ 잘해서는 만족할 수 없었다. 연습 또 연습. 이전보다 더 낫게 들릴 수 없을까, 고민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마치 막다른 골목에 갇혀 숨이 턱 막히는 것 같다고 생각할 즈음, 마이크로 소리가 쫘악 빨려드는 소리에 귀가 트였다. 평소 즐겨부르던 휘파람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살 길은 자신 안에 있었다는 것을. 노래를 할 수 있기에 꿈꾸듯 좋아했던 그동안의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놓아버릴까 하는 순간에 스스로를 다잡으며 포기하지 않고 걸어왔던 축적된 시간은 혼돈 속에 길잡이가 돼 그를 인도하고 있었다. 그가 부른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는 공식 유튜브에서만 1310만여 조회수를 기록했다. 임영웅이 가는 길은 곧 기록이었다.

고향인 경기도 포천 거리는 요즘 임영웅 축하 플래카드로 가득하다. 어디로 향하든 그를 알아보는 이들로 가득하다. 그의 미스터트롯 서사가 영웅신화로 승화될 수 있을까. 그는 말한다. “어제도, 오늘도 그랬듯, 내일도 변함없이 노래하겠다” 소회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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