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WTO 제소카드 꺼낸 한국, 일본과 기싸움 시작
 
산업부 "제소장 격인 '양자협의 요청서' 언제든지 발송 가능"
WTO 제소 준비만으로도 日에 압박 가능…수출규제 강도 완화
제소 시점에 주목…"피해 정도 평가하면서 결정해도 늦지 않다"
정부, 내년도 '통상분쟁대응' 예산 234억원 편성 "소송 비용 확보"
 
일본 wto.jpg
 
[대한안전 박동명 기자] 일본이 한국을 백색국가(수출 심사 우대국)에서 제외하는 조치를 시행한 지난달 28일 이낙연 국무총리가 "일본의 부당한 경제보복 조치를 바로잡기 위해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차질없이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세코 히로시게(世耕弘成) 일본 경제산업상은 같은 날 열린 기자회견에서 "어떤 형태로 제소를 하겠다는 건지 생각을 묻고 싶다"고 반박했다.
 
WTO 제소는 우리 정부가 들고 있는 일본의 수출규제 대응카드 가운데 하나다. 지금 시점에서 두 정부에서 나오는 발언이나 조치는 모두 앞으로 있을 소송전에서 증거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는 뜻이다. 본격적인 제소 절차가 진행되기 전부터 장외설전을 펼치는 이유이기도 하다.
 
1일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제소장 역할을 하는 양자협의 요청서는 언제든지 일본 정부에 발송할 수 있도록 준비를 마친 상태"라며 "제소 시점은 좀 더 큰 틀에서 여러 상황을 고려해 전략적으로 정하겠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양자협의 요청서는 WTO 소송전의 성격이나 방향을 잡아주는 역할"이라며 "우리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한 구체적인 내용이 담긴 서면 자료는 발송 직전까지 계속해서 검토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통상 WTO 제소 절차는 양자협의 요청서를 제시한 시점부터 시작된다. 만약 일본이 양자협의에 응하면 서로 협의에 필요한 시간으로 규정된 60일 이후에 WTO에 정식으로 제소할 수 있다. 협의에 응하지 않거나 60일 이내에 양측의 견해가 좁혀지지 않을 경우 제소국은 WTO에 패널 설치 요청서를 제출하면 된다. 이후 WTO 사무국이 재판관 3인을 선출하고 1심을 시작하게 된다.
 
1심 판정이 나올 때까지는 대략 12개월이 걸린다. 1심 결과에 불복하면 WTO 상소기구로 사건이 올라간다. 여기서 최종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통상 3~4년이 걸린다. 이 때문에 WTO 제소가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었다. 최종 승소 판정을 받는다고 해도 그사이 일본의 수출규제는 계속될 수 있고 이러면 우리 기업에 피해를 줄 가능성도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WTO 제소를 준비하고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일본 정부 입장에서는 압박을 받게 된다고 말한다. 제소를 앞두고 자신들에게 불리한 증거는 만들지 않으려고 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만큼 우리나라에 취할 수 있는 수출규제의 강도도 완화될 수 있다.
 
이런 배경에서 보면 앞서 일본 정부가 개별허가 품목으로 지정한 포토레지스트와 불화수소에 대한 수출을 찔끔찔끔 허용한 것도 전략적인 움직임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번 조치가 수출관리제도 운용을 재검토한 것일 뿐 한국 정부에서 주장하는 '무역보복'으로 볼 수 없다는 기존의 입장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국제통상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애초 일본은 국제 분업 질서를 교란했다는 비난을 피해갈 수 있을 정도의 저강도 조치를 취할 것으로 예상됐다"며 "이번 조치는 통제를 위한 틀을 만드는 것이 1차 목표이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아무리 재량행위라고 하더라도 최소한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고 3개 품목에 대한 수출 심사를 개별허가로 바꾼 것에 대한 구체적인 이유는 제시해야 한다"며 "이런 점에서 WTO 제소 시 일본의 주장이 설득력을 갖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일본 재무성에서 발표한 '무역통계'에 따르면 지난 7월 일본 불화수소의 대(對)한국 수출량은 429t으로 전월 대비 83.7%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액 기준으로는 4억엔에 달한다.
 
우리 정부가 제소를 서두를 필요는 없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송 변호사는 "일본의 실제 수출규제 조치 내용들을 분석하고 이로 인한 피해 정도를 평가하면서 제소를 결정해도 된다"며 "제소가 한두 달 더 빠르고 늦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조언했다.
 
정부의 WTO 제소 의지는 예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내년도 예산안을 보면 통상분쟁대응을 위해 234억원 편성했다. 이는 올해보다 154.4% 늘어난 액수다.
 
일본 정부도 내년도 WTO 관련 예산을 대폭 늘릴 것으로 보인다.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내년 외무성 예산 총액(7939억엔) 가운데 WTO 관련 예산은 2억5000만엔으로 파악된다. 올해 예산은 1억2000만엔이었다.
 
산업부 관계자는 "WTO에서 승소하기 위해서는 국내외 로펌을 활용해야 한다"며 "이때 사용되는 소송 비용을 확보해둔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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