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의 졸속추진 부작용, 구조조정 기능이 흔들린다

기사입력 2018.02.13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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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은행.jpg
 (사진)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산업은행의 졸속추진 부작용,
구조조정 기능이 흔들린다
 
정부와 국책은행이 구조조정 보안책을 강구
 
산업은행이 주채권은행으로 추진하는 구조조정이 번번이 무산되면서 우리경제에 끼치는 부작용도 커지고 있다. 최근 M&A(인수·합병)시장의 대어로 꼽힌 대우건설은 호반건설의 인수철회로 매각이 무기한 연기됐다.
 
산은은 공적자금 회수에 급급해 졸속 매각을 추진하다 실패했다는 비난을 받고 대우건설은 기업가치가 훼손될 위기에 처했다. 매각작업이 진행 중인 금호타이어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금호타이어는 매각 불발 시 법정관리 일종인 P플랜(프리패키지플랜·사전회생계획제도)이 도입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지난 20년간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책임진 산은의 역할에 물음표가 붙는다.
 
산업은행이 기업 구조조정 기능을 축소하고 있다. 연초부터 구조조정 업무에 잔뼈가 굵은 인물들이 물러나고 구조조정부문도 몸집이 줄었다. 연말에는 산은이 구조조정부문을 본부로 축소하는 방안까지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국책은행에 정책금융기관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라는 시그널을 보내는 한편 시장에 기업 구조조정을 맡기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금융위원회는 상반기까지 1조원 규모의 기업구조혁신펀드를 조성하고 기업 구조조정을 지원할 계획이다. 기업인수 등 자본시장의 역할을 강화하기 위한 차원이다. 산은의 구조조정 기능이 얼마나 줄어들 것인지 투자업계(IB)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산업은행에 따르면 올 초 정용석 구조조정부문 부행장과 김석균 기업구조조정 1실장이 물러났다. 정 부행장은 1989년 입행한 후 1998년 특수관리실(현 기업구조조정실) 시절부터 기업 구조조정을 이끈 전문가다. 법정관리와 자율협약의 장점을 살린 사전계획회생제도(프리패키지플랜·P플랜) 도입을 추진하기도 했다.
 
김 실장도 산은 구조조정실에 10년 이상 근무한 베테랑이다. 지난해 더블스타와 금호타이어 매각 협상을 주도했고 대우조선해양에 추가 신규자금 투입을 위해 국민연금 등 주요 사채권자 설득에 성공했다.
 
산은에서 기업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하던 책임자들이 물러나면서 내부에도 기류변화가 감지된다. 현재 구조조정 부문은 성주영 기업금융 부문 부행장이 맡고 있으며 금호타이어는 이대현 수석부행장이 직접 보고받고 있다. 김 실장이 떠난 구조조정 1실장 자리는 아직 공석이다.
 
구조조정 1실이 맡던 금호타이어 매각업무는 자본시장부문 등이 참여한 태스크포스(TF)에 이관했다. TF는 구조조정부문을 겸직한 성 부행장이 아닌 이대현 수석부행장이 이끌고 있다. 이 부행장은 정책기획부문장으로 대우증권과 산은자산운용 매각을 성사시킨 주역이다
 
산은 관계자는 “금호타이어 매각에 다양한 방식을 동원하기 위해 TF를 꾸리자는 게 경영진의 판단”이라며 “앞으로 구조조정 업무는 구조조정실을 포함한 자본시장실 등 관련 부서의 전문가들이 모인 TF가 맡아 속도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말 산은은 조직개편을 통해 9부문·6본부·6지역본부·53부(실)·77지점을 9부문·7본부·7지역본부·54부(실)·74지점으로 1본부·1지역본부·1부를 신설했다. 지점은 3개 축소했다.
 
당장 기업구조조정 1실에 인사이동이 생기면서 연말에는 기업구조조정부문이 기업금융부문의 ‘본부’로 흡수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현재 기업금융부문이 기업구조조정부문 업무를 상당수 처리하는 데다 기업구조조정 1실이 관리하던 조선해운지원단을 해체하는 등 몸집이 줄고 있어서다.
 
조선해운지원단은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대우조선해양과 STX조선해양 등 조선·해운업이 부침을 겪자 산은이 원활한 지원과 구조조정 업무를 위해 2016년 만든 부서다.
 
그러나 지난해 2월 한진해운이 파산했고 현대상선은 산은이 자회사로 품으면서 구조조정이 일단락됐다. 대우조선해양도 지난해 4월 채무재조정 동의를 얻으면서 한고비 넘겼고 STX조선해양은 구조조정이 상당수 마무리됐다. 현재 기업구조조정 1실에는 현대상선만 남았다. 대우조선해양은 기업구조조정 2실 품에 안겼다.
 
이에 대해 산은 관계자는 “구조조정실 인사변화로 조직규모가 줄었지만 아직 조직개편을 논의할 단계는 아니다”라며 “연말이 돼야 알 수 있다”고 말을 아꼈다.
 
산은의 구조조정 기능에 다운사이징(축소)이란 키워드가 붙는 것은 이동걸 회장의 의중으로 볼 수 있다.
 
이 회장은 과거 경제학자와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할 당시 “기업 구조조정은 엄정한 원칙으로 속도감 있게 추진해야 한다”며 “적극적으로 부실기업을 파악하고 새로운 기법을 활용해 실효성 있는 구조조정 방식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원칙주의자인 동시에 구조조정 개혁가로 불리는 이유다.
 
이 회장은 올 초 신년사에서도 산은이 기업 구조조정보다는 정책금융기관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공을 들이는 4차산업과 혁신성장을 주도해 성공적인 4차산업화를 이끌겠다는 포부도 드러냈다. 역대 산은 회장들이 신년사에서 구조조정 구상을 공개한 것과 비교하면 이례적이다.
 
최근 매각이 무산된 대우건설의 거래조건에서도 이 회장의 매각 의지가 두드러졌다. 산은은 대우건설을 매각한 후에도 5000억원 규모의 크레딧라인(Credit line, 한도대출)을 지원할 계획이다. 매각 대상(대우건설)의 매력을 높이는 동시에 인수회사의 경영부담을 줄여준다는 복안이다.
 
관건은 산은의 구조조정 축소에 따른 부작용이다. 산은 입장에서는 공적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지만 갑작스런 정책변화로 구조조정이 지연될 경우 해당 기업에 더 큰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국책은행이 구조조정 보안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기업구조혁신펀드는 민간 구조조정 회사나 민간 펀드가 참여할 만한 유인책이 부족하다”며 “민간이 제 역할을 못 하면 또다시 국책은행이 부실기업을 떠안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므로 정부가 보안책을 마련한 후 시장에 구조조정을 맡겨야 한다”고 지적했다.
 
산은 관계자는 “그동안 조선·해운업의 불황으로 산은의 구조조정 역할이 부각됐으나 정책금융기관으로서 해야 할 일이 더 많다”며 “실제 기업구조조정부문은 9부문 중에서 1부문, 11%에 해당한다. 정부의 기조가 바뀐 만큼 조직의 규모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태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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