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안전
尹대통령, 성모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 심야 방문
국정브리핑서 "비상 진료체계 원활히 가동" 발언 엿새 뒤
'의료 공백' 우려 다독이기…현장은 여전히 '응급실 셧다운' 속출
윤석열 대통령이 4일 경기도 한 권역응급의료센터를 찾아 응급 의료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대한안전신문 홍석균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4일 권역응급의료센터를 심야 방문해 현장 의료진을 격려했다. 최근 국정브리핑에서 "비상 진료체계가 원활히 가동되고 있다"고 강조한 가운데, 현장 행보를 통해 '의료 공백' 우려 여론을 다독이기 위한 취지로 풀이된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이 같은 행보와는 별개로 응급 의료 위기는 이미 심각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가 응급실 지원 대책을 내놨지만 현장에서는 응급실 운영을 이미 중단한 병원이 속출하는 상황이다. 의료개혁을 이끄는 주요 정부 인사들의 '실언'이 잇따르고 의정 갈등에 더욱 기름을 부으면서 사태가 더욱 꼬이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8시50분쯤 의정부 성모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를 방문해 1시간 20분 가량 머물며 의료진을 격려하고 현장 의견을 청취했다.
윤 대통령의 의료기관 방문은 지난 2월 의료개혁 발표 이후 9번째이며, 응급실은 총선 직전인 지난 4월 초 부산대학교병원 방문 이후 5개월 만이다. 최근 '응급 대란' 우려가 커진 뒤 응급실 방문은 사실상 처음인 셈이다.
윤 대통령은 병원에 도착해 마스크를 착용하고 응급센터로 이동해 진료 현장을 둘러봤으며 "주중보다 주말에 응급환자가 더 많냐"고 묻기도 했다. 이어 "응급의료가 필수 의료 중에 가장 핵심인데 국가에서 제대로 관심을 가지고 도와드리지 못한 것 같아 참 안타깝다"며 "헌신하는 의료진에게 늘 죄송한 마음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응급실 수요가 많아지는 명절 연휴가 다가오고 있는데 가용한 자원을 가장 우선적으로 투입해서 의사선생님들이 번 아웃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하겠다"며 "필요할 경우 예비비를 편성해서라도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업무강도가 높고 의료사고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필수의료에 대해서는 빠른 시일 내에 적절한 보상체계가 마련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윤 대통령은 또 "그동안 정부의 수가 정책이나 의료제도가 이러한 어려움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며 "고위험, 중증 필수 의료 부문이 인기과가 될 수 있도록 정부가 제도 개선 등 전폭적인 지원에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방문은 심야에 환자들이 있는 응급실 상황을 감안해 성태윤 정책실장, 장상윤 사회수석, 박민수 보건복지부 차관으로 수행 인원을 최소화했다고 대통령실은 전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여야 대표의 의료기관 방문과는 전혀 상관없이 이전부터 내부적으로 의료현장 방문을 검토해 왔다"며 "지난주 국정브리핑·회견 이후로도 추가로 더 현장을 가자는 논의가 있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의 이날 현장 행보는 지난달 29일 국정브리핑 및 기자회견에서 의료개혁과 관련해 "의료 현장을 한 번 가보시는 게 제일 좋을 것 같다. 여러 문제가 있지만 일단 비상 진료체제가 그래도 원활하게 가동되고 있다"는 언급의 연장선으로도 보인다. 국정브리핑 이후 불과 엿새 만에 직접 현장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윤 대통령이 국정브리핑에서 '의료개혁 완수'를 공언한 뒤, 대통령실과 정부는 더욱 총력전에 나선 분위기다.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취임 첫 전 직원 조회를 개최하고 "모든 개혁에는 저항이 따르기 마련"이라며 "정책과 홍보는 국정운영에 있어 중요한 역할인 만큼, 직원들이 '원보이스'로 최전선 홍보 전사가 되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내부 기강 잡기에 나선 셈이다.
하지만 의료개혁을 이끄는 정부 고위 인사들의 실언이 잇따르면서 사태는 꼬이는 양상이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이날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응급실 대책과 관련 환자 중증 판단을 두고 "본인이 전화해서 알아볼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경증이라고 이해를 하시면 된다"고 말해 파장이 일었다. 대한의사협회는 "국가의 보건의료를 관장하는 자가 이렇게 무지한 발언을 일삼는 것에 심각한 유감을 표한다"고 비판했다.
최근 국민의힘 연찬회에서는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의정갈등과 관련, '6개월만 버티면 이긴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사와 싸우자는 것이냐는 논란이 일자 교육부는 "의사를 대상으로 한 것이 전혀 아니며, 그 반대로 대화와 소통을 통해 의료개혁 추진에 따른 힘든 과정을 극복하자는 의미였다"라고 해명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최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정부의 의료 개혁에 국민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중증·난치병 환자를 떠나버린 전공의가 제일 먼저 잘못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에 따른 전공의 이탈 사태가 6개월 넘게 지속되는 상황에서 갈등에 기름을 붓고 있다는 우려와 함께, 개혁을 이끄는 정부 고위 인사 중 정작 의료계 출신은 없다는 지적까지 잇따르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응급실 운영을 중단했거나, 중단을 검토하는 병원이 속출하면서 위기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복지부에 따르면 이날 기준 응급실을 부분 운영 중단하거나 중단 예정인 병원은 총 5곳으로 집계됐다. 응급실 의사 부족으로 25개 주요 병원 응급실은 당직의사 혼자서 근무해야 할 상황으로도 전해졌다.
정부는 응급실 인력지원 대책으로 군의관 등 보강 인력을 긴급 배치했지만 '땜질식 처방'이라는 지적은 여전하다.
당장 야당은 압박에 나섰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이날 당내 '의료대란 대책 특별위원회'와 함께 서울 고대안암병원을 찾아 응급의료 현장을 점검한 뒤 "의대 정원 증원의 방향이나 지향은 바람직하지만, 규모나 기간 등에서 합리적 근거 없이 과도하게, 급하게 추진돼 문제가 생긴 것"이라며 "이로 인해 의료 개혁의 목적 그 자체와 정당성이 훼손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권에서도 현재 의료개혁 추진 상황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지금도 대통령은 오기와 독선을 버리지 않고 총리, 장관들은 사태를 악화시키는 말실수나 하고 땜질식 대책으로 시간만 보내고 있다"며 "2천명 증원에 반대한다고 의사가 환자를 버리고 떠난 행동은 잘못된 것 맞다. 그러나 의료 붕괴 사태의 해법을 제시할 책임, 떠난 전공의들을 돌아오게 만들 책임은 바로 대통령, 총리, 장관에게 있다"고 강조했다.